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1942.1
많이 좋아하는 시중 최고중의 최고인데
마음을 감상을 표현할 수가 없는 둔한 글솜씨를 원망하며
대신하여 천재교육의 글을 조금 소개한다...
이 시에는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시인의 삶에 대한 자세가 잘 드러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이 시의 1∼3연은 화자가 ‘과거(1연) → 현재(2연) → 미래(3연)’로 이어지는 자신의 삶을 차례로 참회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1연에서는 망국민으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과거 역사 속의 삶을 ‘욕되다’고 느끼고, 2연에서는 현재 시점에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망국민으로서 아무런 기쁨도 없이 무기력하고 괴롭게 살아온 자신의 삶 전체를 참회하고 있다. 3연에서는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참회를 다시 참회한다. 미래의 ‘즐거운 날’을 생각해 볼 때, 화자는 치욕스러운 역사적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소극적 참회에만 그쳤던 현재의 참회를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어 4연에서는 화자가 앞서 행한 참회의 과정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치열한 자기 성찰의 의지를 보여 준다. 5연에서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자세로 잘못된 현실과 맞서는 삶을 선택한 사람이 필연적으로 맞게 될 미래의 비극적 모습을 전망하고 있다. 화자가 보여 주는 자기 성찰의 자세가 치열하지만 잘못된 현실에 맞서기에 개인은 너무나 작고 힘없는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결코 비관적 체념이 아닌, 시대적 양심의 실천을 바탕으로 한 보다 철저한 자기 성찰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 (주)천재교육 | BY-NC-ND
‘부끄러움’의 미학
윤동주는 식민지 지식인의 정신적 고통을 섬세한 서정과 투명한 시심(詩心)으로 노래하였다. 그의 시에는 절박한 시대 상황에서 순교자적 신앙의 길을 선택한 한 청년의 끝없는 자기 성찰의 자세가 반영되어 있다. 이와 같은 자기 성찰은 항상 ‘부끄러움’을 수반한다. 이 ‘부끄러움’의 감정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만 이해하는 것은 그의 시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부끄러움’은 좀 더 근원적인 것, 말하자면 절대적 윤리의 표상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면서 부단히 자신의 삶을 채찍질하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동주 시에 나타난 ‘부끄러움’은 시인의 삶과 시를 지탱해 주는 근원적인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해법 문학 현대시 고등/ 천재교육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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